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사코 황후 (문단 편집) === 동정 === 일본 사회에서도 마사코 황태자비를 안타깝게 여기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보수성이 강하다 보니, 그녀에 대한 동정 여론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그녀에 대한 동정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측은 외국 언론들이다. [[독일]]과 일본의 언론인이 집필한 '''<일본 황실에 갇힌 나비 마사코>'''라는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 출판되어, [[일본 황실]]을 비판하고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한 동정 여론을 펴기도 하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전후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전통과 변화의 양면이 충돌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위협에 휩싸여왔고, 지금도 폐지론에 시달리며 여러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유럽의 왕실들도 여전히 보수적 면모들이 강한 편인데, 일본의 황실은 더더욱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등. 다만 실제로는 이 나라들도 비교적 최근인 1980~90년대까지는 가급적 왕족 아니면 귀족과의 결혼을 선호하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평민 집안과의 결혼에는 그 집안이 아무리 상류층 집안이더라도 부정적이었다. 이 나라들은 2000년대부터 직계 왕족이 자국 평민은 물론 문제 많은 인간이나 외국인과의 결혼도 허용하는 추세이다. 물론 이 '문제 많은' 것도 어느 정도의 암묵적인 선은 있다. 또한 통치 가문에 자식을 시집/장가 보낸 평민 집안이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은근히 무시 받으며 따돌림 당하고, 혼인을 한 본인도 출신을 가지고 왕실과 귀족 사회는 물론 언론에 의해서도 무차별적으로 물어뜯기는 건 영국의 캐서린 미들턴과 스웨덴의 다니엘 베스틀링의 사례에서도 나타난, 해당 국가 사회들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외국 출신 배우자의 경우에는 왕위 계승 순위에서 밀린 왕실 구성원과 결혼하는 것이 아닌 한, 철저히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교육시켜 자국민 수준으로 자국의 언어를 구사하고 문화에 맞춰 행동하도록 하고 있으나, 여전히 작은 실수에도 왕실과 귀족 사회 그리고 언론들이 나서서 물어뜯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2020년대에도 여전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상 마사코 황후와 같이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며 자신을 증명하거나 혹은 이혼하여 이들의 공격 타겟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다. 실제로 캐서린 미들턴과 다니엘 베스틀링도 "이러다 누구 하나 자살하는 게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자국 상류 사회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당하였으나 결국 수 년에 걸친 자기 증명으로 이런 공격들을 돌파하고 안정적 지위를 구축했다. 때문에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러한 압박감 때문에 자국 통지 가문과의 혼인을 기피하는 집안들이 평민 가문들 사이에서 많다.] 일본은 [[에도 막부]]가 몰락한 이후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천황이 국가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며 다시 상징적 존재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일본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의 도입과 급속한 경제 발전을 거치며 급격한 변화를 겪었지만 황실은 '살아 있는 일본 전통의 상징'과 다름없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사코 황태자비는 '''현대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었고, 애초에 [[일본 황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 서구권에서는 "황태자와의 결혼이, 한 촉망받는 [[외교관]]의 일생을 망쳐버렸다"는 평이 있다. 2020년대 일본에서도 국민들의 여론은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황태자와 결혼하며 인생이 단단히 잘못 돌아갔으나 이를 인내와 끈기 그리고 올곧은 소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풀어나간 여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 마사코 황후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일본 사회의 황실에 대한 보수적 혹은 방임적 시각과 황실의 괴롭힘을 견뎌내야 했다.[* 다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왕실과 관련한 국민들의 시각 혹은 왕실의 보수적 성격은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니었다. 당시 영국 국왕과 국서였던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마운트배튼 공도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다 국민 여론과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의 등쌀에 장례식에 참석한 바 있고, 스웨덴 왕실은 국왕이자 아버지인 칼 구스타프 16세가 자신의 맏딸인 빅토리아 공주에게 왕위가 계승되는 것을 반대하며 왕위 계승 규칙을 개정하려는 의회와 대치한 전적이 있다. 그리고 [[칼 16세 구스타프]]가 자신의 딸의 왕위 승계를 반대하고 각종 성추문을 불러일으켰음에도 스웨덴 국민들은 국왕의 의견과 사생활에 대해 언론과 국민이 가타부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여론을 보인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